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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구리의 잡학탐구
LIFE/TRAVEL

빈 맛보기

by 자연데생 너구리 2025. 6. 27.

8월 10일

인스브루크역 전광판

 역 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빈으로 향했다. 인스브루크에서 빈까지 가는 기찻길은 독일 땅을 조금 지나가서, 비록 기차 위에서지만 독일 땅도 조금 구경할 수 있었다. 꽤 오래 걸리는 여정이었는데 친구들과 보드게임, 잡담도 하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열차 안 안내화면 / 열차 밖 풍경

 오스트리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도시인 잘츠부르크를 건너뛴 건 살짝 아쉽지만, 나중에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빈 중앙역

 빈(Wien), 또는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최대도시다. 한 글자 도시명이 어색하다 보니 '빈'이 쉽게 입에 붙지는 않는데, 그래도 원어 발음을 존중하여 빈으로 표기하겠다(비엔나는 라틴어(또는 이탈리아어) 표현이다).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거점으로 오랫동안 제국, 더 나아가 유럽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던 대도시다.


더보기 :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제국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에 황제국은 동로마 제국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동로마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교황은 서로마 제위를 부활시켜 프랑크 왕국 국왕 카롤루스 1세(카롤루스 대제)에게 넘겨준다. 카롤루스 왕조 이후 제위는 독일 왕국의 국왕 오토 1세에게 넘어가 독일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제국,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신성 로마 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아닌 수백 개의 제후국들로 구성되어 있는 연합체였고, 황제는 몇몇 제후들(선제후)의 투표로 선출하였다.

 13세기경 혼란기를 겪던 신성 로마 제국은 스위스 일대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를 황제로 선출한다. 루돌프 1세는 황제로 선출된 뒤 오스트리아 공국을 차지하고 가문의 본토로 삼는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적극적인 결혼 동맹으로 주변으로 영지를 확장하였고, 점차 세력이 강해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직을 세습하면서 수백 년 동안 중부 유럽의 패권을 잡는다.

 

1815년 오스트리아 제국 영토 / 오스트리아 제국 황실 문장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당시 황제였던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지들만을 통합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한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지금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 이탈리아, 폴란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등을 지배했으며 독일(오스트리아)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다민족 국가의 모습을 띠었다. 19~20세기 민족주의의 확산은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치명적이었고, 헝가리인들과의 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는 등 나름 변화를 꾀하였으나 결국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제국이 해체된다.


슈니첼과 굴라시 (S'Stüberl)

 역 근처에 잡은 숙소에서 간단히 체크인을 하고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빈에 오면 꼭 먹으려 했던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식 슈니첼(Schnitzel)은 돼지고기를 얇게 펴 튀긴 음식이다. 기본 슈니첼과 소스를 끼얹은 예거슈니첼(Jägerschnitzel) 두 가지를 시켰는데 소스를 끼얹은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굴라시(Gulasch/Gulyás)라는 헝가리식 소고기 스튜도 오스트리아에서 즐겨 먹는 메뉴로, 한국인들이 좋아할 법한 맛이다. 가게에 현지 어르신들이 많아 분위기도 좋았던 기억이 난다.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가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역에 개찰구가 따로 없고 바로 승강장이 나와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는데, 현지 사람에게 물어 보니 발권기에서 표를 산 뒤 가지고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다만 탑승 전에 티켓을 펀칭하여야 했다.

빈 지하철 승강장 / 지하철 노선도

 Karlsplatz 역에서 내려 시내를 구경했다. 건물도, 사람도 많아 인스브루크와는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도로에는 전차와 자동차, 마차들이 복잡하게 돌아다녔다. 국립 오페라 극장 앞에서 호객하는 사람도 만났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가 음악으로 유명하다 보니 이곳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은데, 필자는 나중에 따로 예약한 오페라가 있다 보니 그렇게까지 끌리진 않는 선택지였다.

빈 오페라하우스 주변
모차르트와 악수하기 / 빈 시내 풍경

 빈에는 재미있는 기념품점이 많았다. 오페라하우스 옆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창의적인 기념품들을 구경해 볼 수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위인들인 모차르트나 프로이트, 또 오스트리아 황실 관련된 것들도 종종 보였다. 필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가계도를 하나 구매했다. 사실 가계도가 궁금했던 건 아닌데 겉면에 (위쪽 더보기에 첨부한) 오스트리아 제국 황실 문장이 그려진 게 꽤나 마음에 들었다.

빈의 다양한 기념품들

 왼쪽 사진의 음정을 맞출 수 있는 유리잔은 조금 탐났는데, 배낭에 담기에는 부피를 너무 차지할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높은음자리표 모양으로 휘어진 연필을 하나 구매해 봤다. 아직 아까워서 안 쓰고 있다.

오스트리아 - 오스트레일리아 혼동 밈도 유명하다.

 각종 왕궁 건물부터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등 볼거리가 이곳저곳 상당히 많다. 유럽 귀족 하면 생각나는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은 빈을 정말 좋아할 듯 싶다. 이날 우리는 간단히 시내 산책만 해서 구석구석 자세히 보지는 못했으나,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볼 가치가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파시즘 비판 기념물 / 시시(바이에른 여공작 엘리자베트) 박물관

카페 탐방

카페 데멜(Demel) 앞에 줄선 모습.

 빈은 커피와 디저트로도 유명하다. 자허(Sacher)나 데멜(Demel) 같은 몇몇 유명하다는 카페를 가 봤는데, 하나같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리에 앉아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여러 카페 내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카페 데멜에서 케이크 몇 조각을 포장하고 카이저슈마렌(Kaiserschmarrn)이라는 팬케이크 비슷한 요리를 주문해 길거리에서 먹어볼 수 있었다. 카이저슈마렌은 기대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커피를 같이 마셨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케이크 / 카이저슈마렌 (Café Demel)
거위 간 크렘브륄레 / 타펠슈피츠 / 송아지 머리 튀김 (Plachutta Wollzeile)

 일행들과 함께 먹는 마지막 저녁식사는 조금 특별한 곳에서 먹었다. Plachutta라는 꽤 인기가 많은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점이었는데, 이곳의 대표 메뉴는 사진 가운데에 보이는 Tafelspitz(타펠슈피츠)라는 갈비탕 비슷한 요리다. 솔직히 그리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일단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먹는 방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 마치 귀족이 되어 특별한 요리를 맛보는 듯한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거위 간(푸아그라)과 크랜베리를 사용한 스타터와 송아지 머리 튀김 같은 특이한 메뉴들도 도전해 볼 수 있었다. 

8월 11일

 일행들과 헤어지고 혼자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짐을 숙소에 맡긴 뒤, 마지막 일정으로 지하철을 타고 쇤브룬 궁전에 도착했다.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

쇤브룬 궁전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인 쇤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가의 여름 별궁으로,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궁궐도 궁궐이지만 넓게 펼쳐진 정원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시간관계로 내부는 따로 관람하지 않았고, 대신 정원 쪽을 둘러보며 쇤부른 동물원으로 향했다.

쇤부른 동물원의 동물들

 쇤부른 궁전 정원에 위치한 쇤부른 동물원은 1752년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면적이 꽤 넓은데다 북극곰부터 코끼리까지 상당히 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볼 수 있어서 기대 이상이었다.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습니다'라는 밈을 역이용한, 사실 오스트리아에도(쇤부른 동물원에) 캥거루가 있다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점심식사(Brandauer Schlossbräu)

 궁궐을 빠져나온 뒤 점심식사로 오스트리아에서 그동안 먹은 것과 대략 비슷한 요리들을 주문했다. 사진 가운데의 립 플래터 같은 요리가 꽤나 맛있었고, 합리적인 가격에 맥주도 맛있어서 좋은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근처 젤라또 가게에 들러 디저트를 먹으며, 일행들과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맡겼던 짐을 찾은 뒤 일행들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필자는 다음 숙소로 향했다.

 아마 여행을 같이 갔던 일행들은 이 글을 안 보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 볼수록 일행들이 고생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 명이서 여행을 잘 마무리했기에 남은 열흘 간의 배낭여행에서도, 나중에 간 다른 해외여행들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빈까지 한 달 가까운 어려운 여정을 함께해 준 일행들에게 소소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숙소 로비 화장실 앞에 적혀 있던 인상적인 유머. 글이 좀 짧은 것 같아서 추가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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