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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RAVEL

모자이크의 도시

by 자연데생 너구리 2026. 3. 7.

8월 19일

 베로나역에서 13시쯤 출발해 볼로냐에서 환승하고 라벤나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기차가 점점 연착되더니 환승해야 할 볼로냐 역에 예정보다 1시간 넘게 늦게 도착했다. 환승 여유 시간을 1시간이나 잡아 두었는데, 화가 나서 따지러 가려니까 어찌저찌 찾은 역무원은 다른 고객의 항의로 나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나만 손해인 것 같아서, 그냥 다음 표를 구매해서 탑승했다. 실수로 1분 뒤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하고 탑승에 실패해 버려서, 볼로냐-라벤나 구간 요금을 3배로 낸 바보가 되어 버렸다. 

볼로냐역에서 판매한 피자와 아란치니

두 번이나 놓친 열차를 기다리며, 점심에 약간 아쉬웠던 피자를 다시 사서 먹었다.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표 검사도 잘 안하지만)당신들 잘못으로 열차를 놓쳤으니 다음 열차를 표 없이 탔다고 말했어야 하나 싶다. 라벤나에는 약 18시경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라벤나와 아드리아 해를 연결하는 칸디아노(Candiano) 운하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속한 라벤나(Ravenna)는 아드리아해와 접하는 항구도시다(사실 생각보다 내륙인데, 운하를 통해 바다와 연결된다). 약간 생소할 수 있지만 5세기에 서로마 제국, 그 이후에는 동고트 왕국, 동로마(비잔틴) 제국 라벤나 총독부의 수도로 기능했던 곳이다.


더보기: 서로마 멸망 이후의 이탈리아

 4세기 말~5세기 초부터 서로마 제국은 내부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476년에 게르만계 장군 오도아케르가 라벤나를 점령하고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한 뒤 동로마 황제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하는데, 서로마에서의 사태를 관리할 여력이 없던 동로마 황제 제노는 '이탈리아 왕' 오도아케르를 사실상 인정하였다.

 그러나 오도아케르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는다. 동고트족의 왕이었던 테오도리크는 동로마 황제의 위임을 받아 라벤나에 입성한 뒤, 오도아케르를 직접 죽이고 동고트 왕국을 세운다(493). 테오도리크 치하에서 로마인들은 기존의 생활 방식을 보장받았고, 성공적인 외교 전략으로 평화로운 시대를 구가하였다. 이 때문에 그를 테오도리크(테오도리쿠스) 대왕으로 부르기도 한다.

 테오도리크 사후의 분열을 틈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동고트 왕국과의 전쟁(고트 전쟁)으로 540년 라벤나를 점령하고 554년에 이탈리아 반도 땅을 수복하는 데에 성공한다. 동로마는 라벤나에 총독부를 설치하여 이탈리아 영토를 관리하다가 랑고바르드족의 침입으로 점차 영토를 상실하지만 이후 약 200년 가까이 랑고바르드 왕국과 동로마 제국이 반도를 분할하는 형태가 유지된다.

 랑고바르드 왕국이 멸망하고 북부 지역은 프랑크 왕국-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며 도시 국가들이 발달하는 한편, 중부는 교황청의 지배를 받고 남부는 동로마 이후 이슬람, 노르만 세력 등이 들어오면서 이탈리아는 지역별로 매우 다른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서로마를 복속한 오도아케르 (1880년 삽화) / 테오도리크 주화 / 572년경 이탈리아 세력권 지도(하늘색-랑고바르드, 주황색-비잔틴. by Castagna)


 라벤나에서 예약한 숙소는 작은 1인실이었다. 숙소가 일반 가정집같이 생겨서 위치를 찾는 데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미리 약속한 시간에 친구들과 다음 여행(한 달 뒤 아이슬란드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에 대해 비대면으로 회의하고,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대충 사 온 것들로 때웠던 것 같다.

8월 20일

 라벤나를 볼 날은 이날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짐을 메고 숙소를 떠났다. 짐 보관 서비스(유료)를 제공하는 호텔에 들러 짐을 맡기고 시내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길을 가면서 동고트 왕 테오도리쿠스의 영묘를 옆에서 보고, 요새 같은 곳도 지나쳤다.

테오도리쿠스 영묘 / 브란칼레오네 요새

 이런 곳들을 지나친 이유는, 라벤나에서 보려는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모자이크화들이다.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사실 별볼일 없는 구조물 하나였다. 이는 동고트 왕국 시절 지어진 아리우스파 세례당(Battistero degli Ariani)인데, 팔각형의 좁고 길쭉한 공간과 천장의 모자이크화가 인상적이다. 아리우스파는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기독교 교파 중 하나로, 동고트족들이 믿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명을 읽어 보면서 주류 기독교와는 다른 표현 방식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리우스파 세례당의 천장 모자이크화

 구조물이 워낙 작고 열려 있길래 그냥 들어갈 뻔 했는데 나름 입장료가 있었다. 건물 안쪽 바닥이 지면보다 많이 낮은 것도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산 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산 비탈레 성당이다. 이곳은 동로마 라벤나 총독부 시절에 완공되었는데, 비잔틴 양식의 거대한 모자이크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모자이크화가 그려진 공간 / 프레스코화를 그린 공간

 내부는 생각보다 넓은데, 이렇게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화가 남은 공간과 후대에 프레스코화로 새로 꾸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 테오도라 모자이크화

 벽면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그의 부인 테오도라의 초상이 모자이크로 남아 있다. 이탈리아에서 비잔틴(동로마) 황제의 모습을, 그것도 매우 잘 보존된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신기하다. 

천장과 바닥의 모자이크
성당과 그 주변의 모자이크 작품들

 알록달록한 돌 조각을 촘촘히 이어 붙여 그림을 완성하는 모자이크 양식의 작품들을 성당 주변에서 많이 전시(및 판매)하고 있었다. 라벤나에서는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표지판까지 모자이크화로 되어 있는 것이 꽤 재밌었다.

라벤나 포폴로 광장

시내를 가로질러, 이번엔 모자이크 말고 다른 것을 보러 갔다.

단테 묘와 단테 박물관

그냥 오래된 석관 / 단테의 무덤 / 2차대전 기간 단테의 유해가 묻혔던 곳

 이곳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유해가 묻혀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단테의 무덤을 찾아 이곳까지 왔던 것을 기억한다. 가운데 사진에서 보이는 그의 무덤을 보기 위해 줄을 약간 섰는데, 내부에선 뭔가 촬영 중인 것 같았다. 예전 피렌체 에피소드에서 단테에 관해 잠시 언급하긴 했는데, <신곡>을 쓰고 이탈리아어를 정립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다시 설명하겠다. 피렌체 출신인 단테는 정치 싸움에 휘말리다 고향에서 추방되어 라벤나에서 죽었는데, 아직까지도 이곳 라벤나에 묻혀 있다.

 그의 무덤 주변에는 단테 박물관이 있어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밥을 먹으러 갔다.

피아디나와 라구 카펠레티, 레몬 소르베 (Ca' de Vèn)

나름 고심해서 선택한 레스토랑이었는데, 분위기도 좋고 맛도 괜찮았다. 피아디나(Piadina)라는 얇은 빵에 프로슈토와 치즈가 들어간 요리, 라구 소스에 카펠레티(Cappelletti)라는 속을 채운 파스타까지 전부 지역 전통 요리로 주문해 봤다. 디저트까지는 양이 좀 많아서 시키고 후회했다. 혼자 다니면 먹을 때가 항상 아쉽다.

단테의 집과 단테 박물관으로 이어진 관람에서는,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단테가 어떤 작가인지, 또 <신곡>이 어떤 작품인지를 나무위키를 뒤져 가며 공부해 봤지만 아무래도 <신곡>을 읽지 않아서인지 전시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전시가 깔끔하긴 한데 단테에 관심이 없다면 굳이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념품점에서 선물용으로 <신곡> 원어판 미니북을 구매해 갔다.

성 안드레아 경당 / 대주교 박물관 전시물

 다시 모자이크를 보러 주변의 라벤나 대주교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작은 모자이크가 보존된 공간이 있을뿐더러, 그 외에도 재밌는 유물들이 많다. 아래 사진은 6-7세기경의 달력인데 너무 신기하게 생겨서 찍어 왔다. 동로마 지역에서 가져온 대리석 판에 각 년도의 부활절을 계산하는 내용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Basilica di Sant'Apollinare Nuovo)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외부 / 내부

 마지막 모자이크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서 구경했다. 성당 내부의 아치 구조 위에 모자이크화가 매우 넓게 펼쳐진 것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산 비탈레 성당만큼이나 다양한 그림이 있어 재미있게 감상해 볼 수 있다. 

기념품점에서 발견한 예쁜 모자이크화. 라벤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 모티프다.
Basilica di San Giovanni Evangelista / 성당 내부에 전시된 모자이크화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기차역 바로 앞의 자그마한 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Evangelista)이었다. 별 거 없어 보이지만 라벤나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곳 역시 모자이크화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벤나 거리의 모자이크화들 / ???(프랑스 예술가 Invader의 작품인듯 하다)

짧은 시간 동안 모자이크화만 잔뜩 보고 오긴 했지만, 라벤나는 충분히 하루를 쓸 만한 도시였다. 거리 곳곳에 모자이크화를 숨겨 놓은 것도 재미있어서,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구경하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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