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라벤나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중심 도시, 볼로냐로 이동했다. 볼로냐에서는 원래 게스트하우스 숙소를 예약해 뒀었는데, 여행 마지막 도시인 기념으로 그냥 (무료) 취소하고 약간 돈을 더 써서 편안한 1인실을 잡았다.


볼로냐 첸트랄레 역에 오니 지난번 열차 놓친 기억이 나서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역은 현지에서도 복잡하기로 악명이 높은 듯하다. 환승 헤매다가 열차를 놓친 게 괜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라벤나에서 낮 시간을 거의 다 써서 이날은 다른 관광은 따로 하지 않고, 숙소에서 짐을 풀고 마트에 들러 간단한 요깃거리로 저녁을 때웠다. 프로슈토가 너무 맛있어서 계속 사먹게 된다.
8월 21일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볼로냐에서는 위 사진처럼 건물 외곽에 포르티코(portico)라고 불리는 회랑 구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인구(특히 볼로냐 대학의 학생들 등)를 수용하기 위해 건물 위층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인도가 거의 다 회랑으로 되어 있어서 걸어 다닐 때 약간은 어둑어둑했다. 길을 가다가 열려 있는 멋진 교회에도 잠깐 들렀다.
Piazza del Nettuno


회랑을 따라 남쪽으로 쭉 걷다 보니 뻥 뚫린 공간이 나왔다. 이곳 시내 중심부의 네투노 광장 옆으로는 궁전 등 오래된 건물들이 펼쳐져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네투노, 즉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의 동상이 있는 분수대를 찾아볼 수 있다.

조그만 입구로 들어가 보면 안에는 도서관이 펼쳐져 있다. 오래된 건축물에 현대식의 깔끔한 도서관이 잘 어울리게 꾸며 놓은 것 같다. 궁전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아래쪽에 발굴된 고대 유적을 볼 수도 있다. 그리 오래 구경하지는 않았지만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광장 한쪽에는 2차대전 기간에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파르티잔/Partigiano 혹은 Resistenza)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 사람 하나하나 사진과 이름을 기록해 둔 것이 인상 깊었다. 바로 근처에는 유리로 된, 1970~80년대 사건 추모비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다. 1974년과 1980년에는 新파시스트들의 테러 공격으로, 1984년에는 마피아의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Archiginnasio di Bologna

네투노 광장에서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하는 아르키진나시오(Archiginnasio)는 16세기에 지어져 볼로냐 대학교의 강의실로 활용되었던 건물이다. 19세기부터는 도서관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역시나 회랑 구조로 올라가 있는 건물이 돋보이고, 벽면과 회랑 천장에 화려하게 장식된 그림과 석판들이 눈에 띈다.


이들 석판들은 당시 활동했던 의학자들(교수)이나 추기경들(아마도 후원자?)에게 헌정된 것 같다. 내용보다도 장식이 워낙 복잡해서 볼만하다.


아르키긴나시오의 하이라이트는 해부학 강의실이다. 의자들로 둘러싸인 강의실 중앙에는 하얀 탁자가 있어 그 위에 시신을 놓고 해부했다고 한다. 전에 해부학 벽면은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 등 의학자들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전부 목재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특이한 분위기다. 강의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 그때 학생들도 필기를 했을지 궁금하다.



많이 화려한 벽 장식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 안에서는 갈릴레이, 오일러, 아보가드로, 라플라스, 린네 등등 이과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과학자들의 저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책을 꺼내 보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 저자를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볼로냐 시립 고고학 박물관(Museo Civico Archeologico Bologna)
이곳은 무료관람을 할 수 있었다. 돈을 낼 생각을 하고 들어갔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냥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연찮게도 또 이집트 전시가 있어 열심히 구경했다. 몇 주 전 방문했던 카이로 박물관보다 전시물 수는 적어도 전시 퀄리티가 상당히 좋았다.






다양한 유물들이 깔끔히 정리되어 상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져, 솔직히 말하자면 카이로에서보다 더 알차게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어째서 볼로냐에 이렇게 많은 이집트 유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2층에는 이탈리아 유물들이 있다. 선사 시대부터 에트루리아 문명 유물들, 켈트, 그리스, 로마 문명 유물들까지 다양하게 있는데 유물 수가 워낙 많았고, 관람 동선도 약간 꼬여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나름 에트루리아 시절(로마 이전) 유물들을 좀 보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고대 로마 이전의 역사에 관해서 궁금하다면 꼭 와볼 만한 곳이다.



뜬금없게도, 고고학 박물관 특별전시로는 이탈리아의 정치인 엔리코 베를링구에르(Enrico Berlinguer)의 생애를 다룬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시에 들어갈 때 별도로 새로운 표가 필요 없다길래, 그냥 구경해 봤다(직원은 내가 이 전시를 왜 보러 오는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내용은 죄다 이탈리아어라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쪽을 좋아해서 재밌었다. 베를링구에르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6대 서기장으로, 온건적인 정책과 반소 행보 이탈리아 공산당의 전성기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한다. 볼로냐(에밀리아로마냐주)는 좌파 성향이 강해 오랫동안 이탈리아 공산당(PCI)과 그 후신 정당들(현재는 민주당)을 지지해 왔으며, 아마도 이 때문에 그에 관한 전시도 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다.
Basilica di San Petronio



박물관을 나와 Piazza Maggiore로 나오니 전에 지나쳐 온 큰 성당 하나가 보였다. 산 페트로니오 성당에는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거친 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내부가 매우 넓은 곳이었다. 정갈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장 구멍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달력처럼 이용하는 특이한 설계를 사진으로 남겼다.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먹을 것으로도 상당히 유명하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의 원조이자 프로슈토(Prosciutto)로도 유명한 파르마(Parma), 발사믹으로 유명한 모데나(Modena)가 모두 에밀리아로마냐에 위치해 있으며 볼로냐는 라구(Ragù) 소스와 토르텔리니(Tortellini)라는 만두 비슷한 파스타로 유명하다. 근처 시장에서 이런 것들을 전부 구경해 볼 수 있었는데, 필자는 기념품으로 발사믹 가게에 가서 괜찮은 발사믹 하나를 골라 봤다. 몇 가지 발사믹을 맛보면서 추천받고, 발사믹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해서도 들어볼 수 있어서 괜찮은 경험이었다.


점심으로는 실내 시장(Mercato di Mezzo)에서, 라구 소스 라자냐와 카프레제 샐러드를 먹었다. 라자냐 색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원래 전통 볼로냐식 라자냐는 시금치가 들어간 초록색 파스타를 쓴다고 한다. 무난히 맛있었는데 샐러드가 생각보다 양이 좀 많아서 안 시켜도 될 뻔했다.

볼로냐의 또다른 명물인 탑들을 지나쳐 걸렀다. 중간중간 재밌는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한 기억도 나는데 글이 길어지다 보니 굳이 넣지는 않겠다. 아래의 국제 음악 박물관(및 도서관)에서는 음악 관련 전시물들을 관람했다.






옛날 악기나 악보의 발달 과정, 근대 오페라 작곡가들의 흔적부터 현대의 특이한 일렉기타들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음악에 조예가 별로 없다 보니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름 시간 때우기 좋은 곳이었다(이곳 말고 특별히 보러 갈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저녁은 원래 토르텔리니를 먹으려다가, 티젤레(Tigelle)라는 납작한 빵에 다양한 햄(프로슈토, 모르타델라 등)이 곁들여 나오는 지역 전통 메뉴를 주문했다. 오른쪽 사진처럼 빵 사이에 햄을 끼워 먹는다. 야외 테이블이었는데 직원이 매우 유창한 영어로 친절히 대해줬던 기억이 나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정말 맛있었다. 물론 필자가 햄 종류를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식사용으로는 약간 부족해서(그리고 다른 것도 먹어보고 싶어서), 주변에 새로 생긴 듯한 해산물 튀김 가게가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생선(아마 정어리?), 새우, 오징어 등 해산물 튀김에 칩(고구마였나, 잘 기억이 안 난다)이 섞여 나오는데 맥주와 정말 잘 어울렸다. 오른쪽 사진처럼 종이에 담겨 나오는데, 해산물을 다 먹으니 밑바닥에는 튀긴 커스터드 크림이 있었고(이걸 발견하니 직원이 뭐라 뭐라 이탈리아어로 했는데, 못 알아들었다..) 달콤하니 맛있었다.

열심히 박물관을 다니고 열심히 먹고 나니 해질녘이 되어, 볼로냐에서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하루 정도 더 있으면 여유롭게 둘러보면서 더 다양한 요리를 먹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남았다. 은근히 구경할 게 많아, 로마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도시로 선택한 것이 후회되지 않는 멋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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