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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RAVEL

여행의 끝

by 자연데생 너구리 2026. 5. 4.

8월 22일

볼로냐역에서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볼로냐역에서 로마행 열차를 기다렸다.

로마 테르미니역을 나오자마자 짐을 근처에 맡기고, 가벼워진 몸으로 이탈리아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열심히 담기로 했다.

 가장 먼저 구경한 곳은 축구 유니폼 샵. 친구 부탁을 받기도 했고, 스스로도 하나쯤 사고 싶어서 구경했다. 이탈리아 국대 유니폼 저지를 하나 사서 지금까지 열심히 입고 있다.(안타깝지만 최근까지도 이탈리아 대표팀 성적이 영 좋지 않다) 

다시 돌아온 트레비 분수에서는, 동전을 뒤로 던져 이곳에 또다시 올 수 있기를 기원해 봤다. 

마지막 만찬으로 까르보나라와 연어 요리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하다가 그냥 로마 요리인 까르보나라를 먹었는데 좀 급하게 선택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뭐, 맛있었다.

몰타 기사단(Sovrano Militare Ordine Ospedaliero di San Giovanni di Gerusalemme di Rodi e di Malta)

몰타 기사단 본부

 그래도 관광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는 동안, 로마에 바티칸 외에 다른 초소형 국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와서 찾아가 본 곳은 '몰타 기사단(구호 기사단)'이다. 십자군 전쟁 때 결성된 기사단인데, 한때는 몰타를 근거지로 하여 독립 국가처럼 활동하였으나 나폴레옹에게 몰타를 빼앗긴 이후 영토는 되찾지 못하고 현재는 평화적인 수도회 형태로 그 본부가 로마에 남아 있다. 별로 국가 같지 않지만 나름 여권도 발행할 수 있고, 생각보다 많은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건물 주변에서 몰타 기사단의 깃발이나 안내문 등 흔적들을 찾아볼 수는 있었으나, 안에 들어가거나 기사단 일원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로마에서 할 짓이 어지간히 없다면 와볼 만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 / 오벨리스크 또 너야(몬테치토리오 궁전 앞)

 이외에도 여기저기 놓친 유적지들이나 기념품샵을 구경하며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냈다. 다만 트러플 제품을 사면서 반입이 되는 건지 너무 오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가공된 제품이라 문제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녀도 몇몇 관광지들은 놓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모든 곳에서 그랬듯이 어차피 전부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약속했듯이, 언젠가 다시 돌아와 구경해 보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피우미치노 공항의 티웨이항공 줄에는 한국인들로 가득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집에 선물할 기념품을 고르다 보니 비행기에 금방 탑승할 수 있었다.

피우미치노 공항 / 조금 큰 체스판

이탈리아를 마무리하며

 이탈리아가 좋은 관광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먹을 것도 많아서 음식이 물리지 않고, 물가도 (다른 더 비싼 유럽 국가에 비해서는) 아주 비싼 편은 아니며,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여 볼거리도 많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군데군데 약간 위험해 보이는 동네가 보이고(유럽에 안 그런 곳이 없긴 하겠지만), 이탈리아 역사나 예술 등에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광객이 너무 많기도 해서, 복잡하고 상업적인 '관광지' 분위기를 덜 받고 싶은 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여행 동안 가장 좋았던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탈리아라고 답할 것이다. 가장 오래(약 2주) 있기도 했고, 정말 많은 곳을 갔다. 이탈리아의 장점 중 하나가 둘러볼 도시가 많으며, 각각의 도시들이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많이들 방문하는 로마,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도 좋았지만, 조금 덜 유명한 볼로냐나 베로나, 라벤나, 트리에스테에서도 정말 재밌는 여행을 했다. 또, 이런 덜 유명한 도시들을 여행하는 것이 특별히 어렵지도 않았다. 관광객이 많은 만큼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편리하고, 교통도 기차 외에는 특별히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필자에게 이탈리아 여행 대부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직 이탈리아 내에서 못 가본 지역이 많은 만큼, 다음 번에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된다면 새로운 지역에도 가 보고 싶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며

 오랜 여정이었다. 2024년 7월 18일부터 8월 22일까지, 36일간의 여행 동안 6개국, 20개 정도의 도시를 방문하면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빈까지 같이 여행한 두 명의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괜히 일행들을 힘들게 했던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서 종종 반성하게 된다.

 전역 후 사실상의 인생 첫 해외여행으로 갔다온 이 여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꽤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은 것 같다(너무 여행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당연하게 보이던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본인의 세상에서 나가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소한 차이부터,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오는 거대한 차이까지 모두 새로웠고, 또 재미있었다. 중간중간 화나는 일도 많았고 빡빡한 일정에 쫓기기도 했지만, 전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여행으로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글 업로드도 더럽게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간단히 쓰려던 것이, 이집트 여행기를 기점으로 과하게 설명을 많이 하다 보니 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실제로도 여행을 하면서, 또 글을 쓰면서 필자가 조사를 철저히 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음을 알아 줬으면 한다. 위키백과를 뒤지고 번역기를 수없이 돌리면서 이 여행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앞으로 여행기를 다시 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자세히 쓰다 보니 글에 진도가 나가질 못해서, 다음 여행기부터는 좀 더 간단한 버전으로 업로드를 하려고 한다.

 그래도 한 여행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느낀다. 미완성된 블로그에서 겪는 첫 '완성'의 순간이다. 지금까지 여행기를 열심히 읽어 준 모든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