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전날 밤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조금 늦게 일어났다. 피라미드가 보이는 옥상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었다. 조식뷔페의 퀄리티는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먹을 만했고 피라미드가 멋있었다. 숙소 위치가 약간 외곽이라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몇 번 시도한 끝에 겨우 택시를 잡아 카이로 시내로 향했다.
압딘 궁전
카이로 시내 한복판의 압딘 궁전은 19세기에 이집트 총독(사실상 국왕) 이스마일 파샤에 의해 지어진 궁전으로, 이집트의 군주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현재 1층이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있다. 박물관은 무기류와 훈장, 각 나라들로부터 받은 선물들과 중요한 문서들, 은접시 컬렉션 등을 소장하고 있다.
무기류 컬렉션이 상당하다. 주로 중세~근대 시기 총과 칼, 갑옷 위주로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것들부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무기들이 빼곡히 있어서 일일이 보기 힘들 정도다. 야외에서는 여러 종류의 대포를 볼 수 있다.
더보기: 이집트 왕국
이집트는 13세기경부터 정예 기마병 집단인 맘루크들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16세기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에 대해 확실한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맘루크 군부 세력이 계속해서 이집트를 지배해 왔다. 나폴레옹은 1800년경 이 맘루크들을 정벌한다는 명목으로 이집트를 침략하지만 오스만과 영국의 반격으로 후퇴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 맘루크가 쇠약해진 틈에, 이집트에 파견된 오스만 총독 메흐메드(무함마드) 알리는 맘루크 세력을 성공적으로 축출하여 권력을 손에 넣었다. 메흐메드 알리는 본국 오스만 제국과 싸워 이기면서 이집트 총독 자리를 세습직으로 바꾸고 자치권을 얻어 무함마드 알리 왕조를 개창한다. 압딘 궁전을 지은 이스마일 파샤가 바로 메흐메드 알리의 손자다.
이집트는 이후 영국의 비공식적 보호령이 되지만, 1922년에는 공식적으로 독립하여 이집트 왕국으로 인정받는다. 1953년까지 이어진 이집트 왕국은 나세르의 쿠데타로 공화정이 도입되며 끝난다.
압딘 궁전의 화려한 컬렉션은 카이로에 왔다면 놓치기엔 아쉽다. 고대 이집트 것들 보는 거에 질릴 때쯤 되면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창 더울 시간대에 궁전을 나와 시내를 10분 이상 걷다가 Kazaz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현지인 고객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었는데 팔라펠과 수프, 고기와 쌀 요리를 주문했다. 사진 왼쪽의 약간 특이하게 생긴 팔라펠(메뉴에 알렉산드리아 스타일 팔라펠이라고 했던 듯하다)이 필자에겐 정말 맛있었는데 일행들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듯하지는 않았다.
이집트 국립박물관(The Egyptian Museum in Cairo)
카이로 근방에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적어도) 3개가 있다. 하나는 남쪽 콥틱 카이로 근처에 있는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많은 수의 미라가 전시된 곳인데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기자 쪽에 있는 이집트 대박물관(GEM)인데, 2024년 7월에는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굳이 방문하지 않았다. 나머지 하나가 타흐리르 광장 옆의 이곳 이집트 국립 박물관이다. 두 박물관들에 비해 상당히 오래됐지만 그만큼 유물도 많고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국립박물관을 들어가려다가 한 이집트인이 말을 걸어오더니 티켓 오피스가 현재 휴식시간이고, 몇 분 뒤에야 다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조언에 따라 더운 실외를 피해 주변 기념품점 하나를 방문해서 구경해 봤다. 가격이 거의 정찰제이고 직원이 친절해서 기억에 남는다. 사장님이 아스완 분이셨는데, 공장제 기념품이 아닌 진짜 누비아식의 파피루스 그림들을 보여 주셨다(조금 비싸서 사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기념품 몇 개를 구매하고 박물관 쪽으로 다시 걸어가려니 사장님이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아이를 한 명 붙여 주셨다. 이곳 근처는 정말 차가 많은 지역인 데다가 횡단보도가 없어서 길을 건너기가 매우 힘든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발 횡단보도 좀 깔아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집트 국립박물관에 들어갔다. 나름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을 시대별로 정리해 두었는데, 동선이 그렇게 친절하지가 않아서 약간 잘못된 순서로 관람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볼 만했다. 유물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대충 쌓아둔 풍경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다 보려면 정말 하루종일 걸릴 만큼 볼 게 많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보기는 어려우므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또 최근 GEM이 개장하면서 전시물들을 그쪽으로 옮긴다는 얘기도 있다 보니 미리 잘 알아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유물이 많다 보니 찍은 사진이 좀 많다. 각 시대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면서 해당 시대의 유물 사진들을 덧붙여 봤는데 글이 길어져서 일단 접어 두겠다.



선사 시대(~BC 3150) 및 초기 왕조 시대(BC 3150~BC 2686)
이집트에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며 수렵 사회를 이루었다.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부터 지배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3150년 경 나르메르가 상하 이집트를 통일하며 통일국가 이집트의 초대 파라오가 된다. 이때부터 약 300년 간의 초기 왕조 시대에는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가 발달되는 등 왕국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고왕국 시대 (BC 2686~BC 2181)
고왕국 시대는 이집트의 첫 황금기다. 이 시대에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포함해 수많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으며 멤피스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이 강력해진다. 고왕국 시대 말에는 왕권이 쇠퇴하면서 지역 호족들이 세력을 키워 대립하는 혼란의 시대 제1중간기가 이어진다.



중왕국 시대(BC 2055~1650)
제1중간기를 끝내고 다시 이집트를 통일한 것은 테베의 군주 멘투호테프 2세로, 이때부터 중왕국 시대가 성립된다. 영토가 확장되었으며 고왕국 시대의 건축과 예술을 모방하며 문화가 발달하였다. 기원전 1650년경 이민족 힉소스인들이 침입하면서 힉소스와 토착 이집트 왕조가 대립하는 제2중간기로 이어진다.



신왕국 시대(BC 1570~BC 1069)
아흐모세가 18왕조를 세우고 힉소스를 몰아내면서 고대 이집트 최고의 전성기인 신왕국 시대가 시작된다. 람세스 2세, 하트셉수트, 투탕카멘 등 유명한 파라오들이 신왕국 시대의 군주들이다.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지며 기술적,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고 군사 원정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20왕조 이후부터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점차 왕권이 약해지더니 결국 상이집트는 아문 신을 모시는 신관이, 하이집트는 재상 스멘데스가 실권을 잡으며 혼란기인 제3중간기로 이어진다.



제3중간기(BC 1069~BC 664)와 말기 왕조(BC 664~BC 332)
제3중간기 동안에는 리비아계, 누비아계 왕조가 등장하는 등 혼란기가 이어지다가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26왕조가 세워지며 말기 왕조 시대로 넘어간다. 말기 왕조 시대 이집트는 독립했다가 페르시아에 점령되었다가를 반복한다. 페르시아는 마지막 이집트 토착 왕조인 30왕조를 멸망시키고 다시 이집트를 지배하나 이는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 304~BC 30)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자, 휘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를 지배하게 되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32왕조) 시대가 열린다. 중심지는 신도시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지며, 그리스인들이 많이 유입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파라오인 클레오파트라 7세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된다.



로마 시대 이후(BC 30~)
이때부터는 고대 이집트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몇몇 로마 시대 유물들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는 이후 로마 제국-동로마(비잔틴) 제국-이슬람 제국-맘루크-오스만-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한다.
더보기: 투탕카멘
이집트 국립박물관의 하이라이트다. 어린 나이에 죽은 18왕조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은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에 위치해 있는데, 1922년 운좋게도 거의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작은 무덤임에도 5,000여 점의 유물들이 쏟아져나와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며 명성을 얻었다. 발굴 과정과 스토리가 2층 투탕카멘 전시실 앞에 상세히 적혀 있고 황금 마스크를 포함한 몇몇 부장품들은 사진촬영이 불가능한 내부 전시실에 있다. 박물관에 투탕카멘의 마스크만 보러 와도 될 정도로 정말 아름다우니 꼭 놓치지 말자.
열심히 관람하다 보니 박물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빠져나왔다. 기념품샵도 꽤 볼만했다. 유명한 카페 같은 곳에 가 보려고 했는데 이집트인들이 줄로 서 있어서 포기하고 작은 쇼핑몰 같은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Bazooka(바주카)라는 치킨 체인점을 이용했는데 조금 느끼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치킨 먹으러 온 현지인들이 많았어서 나름 이집트의 외식문화 체험을 한 것 같다.
이렇게 길어질 글이 아닌데 사진을 많이 넣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날 관광은 약간 늦게 출발해서 너무 더웠던 것만 빼고 성공적이었다. 숙소로 돌아갈 때 우버가 잘 안 잡혀서 약간 애먹었던 것 같긴 하다만 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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