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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입국하기
7월 25일 아부다비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공항까지 택시를 탔다. 많이 피곤했지만 이집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카이로 공항까지 에어 아라비아 항공기를 타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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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새벽에 아스완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았다. 원래 숙소 측과 미리 연락해서 픽업을 받기로 했었는데, 소통이 잘못되어서인지 차량이 오지 않아 그냥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시내는 밤 1~2시가 다 된 시간임에도 시끄러웠다. 차량이나 당나귀도 꽤 많이 다니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도 꽤 보였다. 카이로보다는 확실히 시골 느낌이 많이 났다.
아스완은 이집트 남쪽 나일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스웨넷(Swenett)으로, 누비아 말로는 디브(Dib)라고 불리던 이집트와 누비아의 경계지대이다. 나일 강은 아스완 이남부터는 급류지대(Cataracts of the Nile)가 있어 수로 이동이 어려운 반면 북쪽으로는 하류 삼각주 지역까지 쭉 선박 운행이 가능했으므로 아스완 고대 이집트에서 무역의 중심지이자 선박이 출발하는 첫 도시의 역할을 해 왔다. 또 화강암 채석장이 있던 곳이기도 하며, 고대 이집트 유적의 화강암들은 대부분 아스완에서 가져온 것이다.
현대에는 수자원 확보 및 나일 강 범람 방지를 위해 아스완 남쪽에 아스완 하이(High) 댐이라는 나일 강 최대의 댐이 지어져 상류에 나세르 호(湖)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집트/누비아 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으나, 국제 사회의 협조로 아부 심벨 신전 등의 일부 유적들은 안전하게 고지대로 옮겨질 수 있었다.
원래 아스완에서는 넉넉히 이틀 정도를 보낼 생각이었지만, 일정 변경으로 인해 이집트에 늦게 입국하는 바람에 관광할 시간이 하루 정도밖에 없어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밤늦게 도착해 일단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바로 아부 심벨로 출발했다. (아부 심벨 신전은 아스완에서 차량으로 3시간 이상 가야 나오는 곳이라서 보통 아침 일찍 출발한다. 우리는 왕복 차량 서비스를 예약했다)
아부 심벨 신전
아부 심벨(أبو سمبل) 신전은 기원전 13세기에 람세스 2세가 지은 것으로 파라오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누비아 지역을 더 수월히 통제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대신전과 소신전 두 개의 신전이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입구가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19세기에 발굴하였고,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물에 잠길 뻔한 것을 조각조각 잘라 재조립하여 현재의 위치에 옮겨 놓았다.(자세히 보면 자른 흔적이 보인다) 대신전 입구에는 4개의 좌상(坐像)이 나란히 있는데 모두 람세스 2세의 것이며, 다리 사이의 작은 입상(立像)들은 그의 가족들의 것으로 여겨진다. 왼쪽에서 두 번째 좌상은 상체 부분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는데 떨어진 조각이 발 바로 앞에 있다.
대신전은 라 호르아크티(Ra Horakhty) 신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신전 입구 바로 위에 그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보기: 고대 이집트의 시대분류
나르메르가 상하이집트를 통일하고 초대 파라오가 되어 이집트 문명은 3000년간 이어져 왔고, 그 오랜 기간만큼 수많은(30개 이상의) 왕조가 등장하고 사라졌다. 각각의 왕조들은 시대 순서에 따라 제 n왕조로 불리는데, 크게는 초기 왕조->고왕국->중왕국->신왕국->말기왕조 시대로 분류되며 시대 사이에는 혼란스러웠던 중간기들이 있다. 말기왕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가 이집트를 정복하며 끝나고 이후에는 그리스계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이집트를 지배하다가, 최종적으로 로마 제국에 복속된다.
이집트 하면 생각날 법한 가장 유명한 군주 클레오파트라(클레오파트라 7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제32왕조) 사람으로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이고, 대피라미드의 주인인 쿠푸는 고왕국 시대 제4왕조 2대 파라오이다. 아부심벨 대신전의 주인공 람세스 2세는 신왕국 시대 제19왕조 3대 파라오로, 기원전 13세기경에 재위했던 사람이다. 람세스 2세는 대규모 토목공사와 군사 원정 등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로 여겨진다.
내부에는 히타이트와의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 부조 등 전쟁과 관련된 벽화가 남아 있는데, 람세스 2세가 적군을 무찌르는 모습이 잘 보인다. 가장 안쪽 방인 지성소에는 네 개의 좌상이 있으며 이들은 당시 주신(主神)이었던 라 호르아크티, 프타, 아문-라 신과 람세스 2세 본인의 것이다. 대부분의 이집트 신전이 그렇듯 직선형 구조이기 때문에 2월과 10월에는 햇빛이 지성소까지 닿는다고 한다. 옆으로 따로 나 있는 방들도 많아서, 잘 보존되어 있는 다양한 벽화를 구경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집트 유적들에는 낙서가 많다. 위 사진을 보면 19세기 유적 발굴 이후 유럽인들이 한 낙서들도 보이지만, 더 오래되어 보이는 그리스 문자/페니키아 문자 낙서들도 있는데 이들 낙서들도 수천 년 된 것이라 연구 자료로서 쓰이기도 한다.
대신전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소신전이 보인다. 소신전은 하토르(Hathor) 여신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은 것으로, 대신전보다는 작으나 간단히 둘러볼 만 하다. 날씨가 더워 매점에서 물을 한 병 샀는데 원래 가격의 몇십 배 되는 가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뿐만 아니라 모든 관광지에서 물값(음료 값)을 상당히 비싸게 받으니 마실 것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다시 아스완으로
관광을 마치고 아스완으로 다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넘어 있었다. 숙소 앞 샤와르마(케밥) 파는 곳에서 샤와르마 몇 개를 주문했는데, 나오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맛은 있었다. 원래 밖에서 먹으려다가 너무 더워져서 숙소에 가지고 들어가 먹었다. 시간이 약간 남았다 보니 좀 더 관광을 하고 싶었는데, 일행들은 조금 지쳐 있어서 혼자 필레 신전으로 향했다.
이집트의 마지막 신전, 필레 신전
원래 카림을 잡으려다 안 잡혀서 지나가던 툭툭을 잡았는데, 역시나 바가지였다. 말도 잘 안 통했고 길도 잘 모르는 건지 계속 물어물어 이동해 겨우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필레 신전까지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혼자 가다 보니 값이 조금 비쌌지만 어차피 와 버린 거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이시스(Isis)를 숭배하는 신전인 필레(فيلة) 신전의 특별한 점은 건물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지어졌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말기왕조 시대 제30왕조 1대 파라오 넥타네보 1세가 지었고, 이후 많은 건물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대에 증축되었다. 오시리스(Osiris) 신의 무덤 중 하나로 여겨져 인기 있는 성지 중 하나였으며, 이집트와 누비아, 심지어는 멀리 그리스로부터도 순례자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멸망 이후 이집트가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을 때에도, 로마 제국에서 이집트의 고유 문화나 신앙을 특별히 탄압하지 않았기에 이시스를 숭배하는 신전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티베리우스나 아우구스투스 등 로마 황제들도 섬 여기저기에 건축물들을 증축하였는데, 아래 사진 오른쪽의 트라야누스 키오스크가 필레 신전을 대표하는 로마 시대 건축물로 남아 있다. 벽에는 이집트식으로 표현한 로마 황제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더보기: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신 누트와 대지의 신 게브 사이에서 오시리스, 세트, 이시스, 그리고 네프티스라는 4명의 신이 태어났다. 이들 중 맏이인 오시리스는 누이 이시스를 아내로 두고 이집트를 지배하였는데, 이를 시기한 동생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이고 14조각으로 토막 내어 이집트 전역에 흩어놓아 버렸다.(이 중 한 조각이 필레 신전에 떨어졌다고 여겨진다) 이시스는 네프티스와 아누비스의 도움을 받아 그 조각들을 열심히 모아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는데, 생식기 부분만은 찾지 못해 진흙으로 빚어 만들었다고 한다.
죽었다 살아난 오시리스는 저승의 왕이 되었으며,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서는 아들 호루스가 태어나 삼촌 세트와의 싸움 끝에 그를 쓰러뜨리고 이집트를 통치한다. 호루스는 하늘의 신이자 파라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으며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른 신격과 합쳐지는 등 다른 방식으로 숭배되어 왔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 기독교가 전해지고 나서부터는 이교도 신앙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신전이 훼손되거나, 개조되어 교회로 쓰이게 되었다. 신전 내/외부의 벽화 곳곳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림을 훼손한 듯한 흔적이 보이며, 이시스 신전의 내부를 보면 군데군데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전은 기원후 6세기 정도까지 사용되다가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령으로 공식적으로 폐쇄되었지만 '최후의 이집트 신전'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나일 강 한가운데 버려진 필레 신전은 이후 범람 때마다 침수되어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침수된 신전의 모습이 나름대로 특이하다 보니 한때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으나, 댐을 지으면서 침수가 점차 심해지자 결국 유네스코 차원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사실 이 정보들을 다 알고 갔으면 좋았겠지만, 들고 갔던 책에 모든 정보가 담겨 있지는 않았어서 섬 안에서는 봐도 엄청난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더워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오후 시간이어서 상당히 더웠는데(45˚C) 목말라 죽을 것 같아서 웃돈을 주고 물을 사 마셨다. 더워도 건조하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는데, 목이 너무 말라서 힘들다. 또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거쳐간 사람마다 계속 팁 달라고 하고, 숙소 돌아갈 때에도 툭툭을 탔다가 택시를 탔다가 난리를 치면서 바가지를 또 당해 버렸다. 한여름에 필레 신전에 갈 때에는 충분한 물을 챙기고 꼭 일행과 함께하고, 여건이 된다면 기사나 가이드와 동행하도록 하자.
뭐 결과적으로는 몇 만 원 깨졌지만(이집트 물가를 고려하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다), 여길 오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필레 신전을 보고 나니 오후 4~5시쯤이어서 아스완 관광은 이쯤에서 마쳤다. 누비아 박물관, 누비아 마을 같은 누비아 관련 관광지들이나 아스완 하이 댐, 미완성 오벨리스크 등이 아스완의 유명 관광지들인데 이곳들은 언젠가 아스완에 다시 온다면 방문해 보고 싶다.
아스완 마무리
시내에 돌아와서 가게에서 물을 조금 사고, 주변에 포장 주문이 많아 보이는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밥을 주문해 숙소에서 먹었다. 그리 거창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고생하고 와서인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생선 옆에 보이는 빵은 이집트 특유의 아이쉬/에이쉬(عيش)라는 납작한 빵으로, 쫄깃쫄깃하고 거친 식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로는 흔히 '걸레빵'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음식을 먹으면서 빵으로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듯이 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원래 아랍어로는 빵을 훕즈(خبز)라고 하는데, 이집트 아랍어에서는 '삶'을 뜻하는 말인 아이쉬를 빵을 부를 때 쓴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스완 여행은 쉽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부 심벨에 갔다 오는 일정이 빡셌을 뿐더러, 엘리베이터나 열쇠, 수도 등 숙소 시설도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이집트 숙박비는 그리 비싸지 않으니, 너무 저렴한 곳은 피하는 것을 추천한다) 도시 자체도 많이 낙후되어 있으며 날씨도 제일 더울 때였고, 관광객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현지인들(아이들 포함)도 많아서 겨우 이집트 이틀차였던 필자에게는 점점 버티기 힘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유산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그 옆에서 호객하고 바가지 씌우거나 팁 달라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기분이 확 나빠진다.(이집트 여행이 전반적으로 이렇다)
그래도 몇몇 양심적이고 친절한 이집트인들이 있어서 버틸 만 했는데, 특히 숙소 주인장이 잘해줬던 기억이 난다. 이집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여정은 룩소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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