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에 파견되어 카투사(KATUSA) 복무를 하다 보면 특히 어르신들로부터 카투사 대신 '카츄샤'라는 명칭으로 꽤 자주 불려진다. 어쩌다 이름이 이렇게 와전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필자는 카츄샤라는 단어가 카투사보다 먼저 알려져 한국인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카츄샤(Катюша)는 러시아어 여성 인명으로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의 애칭이다. 가장 가까운 서양이었다 보니 근대 한국(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러시아 문학이 끼친 영향은 엄청났고, 이때 '나타샤'나 '소냐', '카츄샤'같은 러시아 이름(애칭)들이 널리 알려졌다. 즉 카츄사는 이미 광복 이전부터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6·25 이후 등장한 '카투사'라는 단어를 종종 대체하였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론일 뿐이긴 하지만 나름 합리적이지 않은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늘 가져온 곡 제목이 카츄샤이기 때문이다. 1938년 소련에서 작곡된 노래 카츄샤(Катюша)는 1940년대부터 크게 유행하였고, 이후 여러 언어로 번안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원어-독음-해석 순, 각 절의 끝 두 소절은 반복된다.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라스쯔비딸리 야블라니 이 그루쉬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빠쁠릘리 뚜마늬 나드 리꼬이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븨하질라 나 볘롁 까쮸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나 븨소끼이 볘롁 나 끄루또이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Выходила, песню заводила
븨하질라 뻬스뉴 자바질라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네
Про степного, сизого орла
쁘라 스찝노바 씨자바 아를라
초원의 잿빛 독수리에 대해서
Про того, которого любила
쁘라 따보 까또라바 류빌라
사랑하는 이에 대해
Про того, чьи письма берегла
쁘라 따보 치 삐스마 볘례글라
소중한 편지를 보내오는 이에 대해서
Ой ты, песня, песенка девичья
오이 띄 뼤스냐 뼤센까 졔비치야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Ты лети за ясным солнцем вслед
띄 리찌 자 야스늼 쏜쩸 프슬례드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И бойцу на дальнем пограничье
이 바이쭈 나 달님 빠그라니치이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От Катюши передай привет
앗 까쮸쉬 뼤례다이 쁘리볫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
Пусть он вспомнит девушку простую
뿌스찌 온 프스뽐닛 졔부쉬꾸 쁘라스뚜유
그로 하여 순박한 처녀를 생각케 하고
Пусть услышит, как она поёт
뿌스찌 우슬릐쉿 깍 아나 빠욧
그녀의 노래를 듣게 하렴
Пусть он землю бережёт родную
뿌스찌 온 젬류 볘례죳 라드누유
그로 하여 조국을 수호하게 하고
А любовь Катюша сбережёт
아 류보프 까쮸샤 스볘례죳
카츄샤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라스쯔비딸리 야블라니 이 그루쉬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빠쁠릘리 뚜마늬 나드 리꼬이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븨하질라 나 볘롁 까쮸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나 븨소끼이 볘롁 나 끄루또이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내용에 관해서
조국을 지키러 전쟁에 나간 병사와 그를 기다리는 처녀 카츄샤의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가사 내용이 공감이 되었는지 소련 전체에서(특히 군가의 형태로) 크게 인기를 얻었다. 특히 독소전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대규모의 전쟁이었던 만큼 임팩트가 상당히 컸을 것이다.
토막 러시아어
러시아어에 관한 전반적인 얘기는 저번에 키노 때 했으니 좀 더 세부적인 걸 알아보자. 러시아어를 비롯한 많은 슬라브어 자음에는 연음과 경음의 대립이 있는데, 경음은 일반적인 자음이고 연음은 구개음화(혀가 경구개 쪽으로 이동하여 발음이 변하는 현상)된 자음이다. 자음 뒤에 어떤 모음이 오냐에 따라 그 자음이 연음인지 경음인지가 결정된다. 카츄샤(Катюша)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카튜샤'겠지만, т[t]가 ю[ju]의 반모음 [j]를 만나 구개음화되어 연음 [tʲ]가 되기 때문에 т가 ㅌ보다 ㅊ, ㅉ에 가깝게 들리게 된다.
위의 가사에서는 독음에 경구개음화를 반영하고 된소리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공식적인 러시아어 한글 표기법은 구개음화 반영을 하지 않으며,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즉 표준 표기법대로라면 '카츄샤', '까쮸샤'가 아닌 '카튜샤'라고 쓰는 것이 맞다. 다만 러시아어 표기는 딱히 통일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러시아 문학 번역본들을 보아도 A출판사는 된소리 및 구개음화된 소리로 표기하고 B출판사는 표준 표기법대로 둘 다 배제하는 식이다. 한글 표기가 소설 구성에서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책 제목이나 주인공 이름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쓰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다.
남은 이야기
사실 카츄샤는 2차대전 당시 사용된(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소련제 다연장 로켓포 이름이기도 하다. 소리가 상당히 무섭다
참고자료
러시아 문학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비춰보다, 한겨레, 최원형(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16250.html)
카츄샤(노래), 나무위키(https://namu.wiki/w/%EC%B9%B4%EC%B8%84%EC%83%A4(%EB%85%B8%EB%9E%98))
Palatalization (phonetics), Wikipedia(https://en.wikipedia.org/wiki/Palatalization_(phonetics))
이 글에는 비전문가의 뇌피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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