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아부다비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공항까지 택시를 탔다. 많이 피곤했지만 이집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카이로 공항까지 에어 아라비아 항공기를 타고 이동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비행기를 탈 때 창가 좌석을 선호하는 편이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주변 지역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비행경로에서는 카타르와 바레인 해안가,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지대와 홍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할 것 없는 비행기 안에서 창 밖 구경은 언제나 준수한 컨텐츠이고, 구름 한 점 없는 여름의 중동 상공에서는 특히 더 구경하기 좋다.
스크린이 있는 장거리 비행에서는 비행기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 주는 경우도 많지만, 없더라도 약간의 방향감각과 구글맵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파악 가능하다. 다만 비행기에서 위치추적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때도 많고, 인터넷이 없어 지도 로딩도 자세히 되지 않으므로 잘 모르겠다면 일단 사진만 찍어 두고 내린 뒤에 다시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열심히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다 보면 나일 강이 보인다. 인류 문명의 요람이자 역덕들의 영원한 성지, 이집트다.
이집트(مصر, Egypt)
이집트, 또는 '이집트 아랍 공화국'은 북아프리카(시나이 반도 지역은 서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나일 강 유역과 그 주변 지역을 영토로 한다. 나일 강이 북쪽으로 흘러 지중해로 빠지고, 서쪽으로는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며 동쪽으로는 홍해를 둔다. 동북쪽으로 시나이 반도를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로 연결되고, 시나이 반도 서쪽에는 수에즈 운하가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한다.
인구는 약 1억 2000만 명 정도로 꾸준히 증가 추세이며, 인구 대부분이 나일 강 유역과 삼각주 지역에 밀집되어 살고 나머지 땅은 거의 사막이다. 이집트 방언의 아랍어를 사용하는데 이곳 말로는 이집트를 미스르(مصر, Misr)라고 부른다. 공화제 국가이면서 군사정권 치하이며,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일부 기독교인(콥트 정교회 등)도 있다.
고온건조한(드디어 사막다운) 공기를 느끼며 이집트에 입국한다. 이집트 입국을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를 받는 방법은 정말 간단한데,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심사를 하기 전 비자를 판매하는 창구에서 구매를 하면 된다. 가격은 인당 25달러, 물론 달러는 미국 달러다. 이집트는 이집션 파운드(EGP)라 불리는 자국 화폐가 있지만, 달러도 널리 사용되는데 이는 아마 EGP의 불안정성 때문일 것이다. 아래 그래프를 참고하자.
혼돈의 카이로
카이로 공항을 나오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건 수많은 택시기사들의 호객이었다. 우리는 이날 밤에 먼저 비행기를 타고 아스완으로 넘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카이로로 돌아와서 관광을 할 생각이었기에 일부러 숙소를 공항 근처에 잡았다. 별로 멀지도 않은 숙소를 가는 데에 계속 바가지를 씌우려고 해서 택시 대신 카림이나 우버를 잡으려 시도해 보았지만, 공항 앞을 택시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어서 우리 차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카이로의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지쳐가며 결국 우버 잡기를 포기하고 택시기사와의 적당한 협상을 통해(물론 이래도 바가지이지만) 공항을 탈출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면 먼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의 교통신호와 차선, 아랍 숫자로 적힌 번호판이 보이고 곧이어 매캐한 매연 냄새가 느껴지며 '진짜 중동'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El-Nozha
숙소 찾기도 정말 어려웠다. 카이로 시내 쪽이 아니라 공항과 가까운 어중간한 위치의 숙소라서 그런지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지역 같았다. 처음에는 이름이 비슷한 다른 호텔을 착각해 들어갔고, 다시 제대로 찾아가려고 하니 군인 하나가 길을 막아섰는데 아랍에미리트와는 달리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 상당히 난감했다. 계속 물어보다가 다른 군인이 오더니 그냥 지나가게 해 주었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숙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숙소가 공군기지 구석에 박혀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진입하는 곳마다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듯했다. 외국인들보다 현지 사람들(군인 가족들로 추정)이 주로 이용하는 숙소 같은데 부킹닷컴 리뷰를 보면 필자와 똑같이 군인들에게 가로막히며 길을 잃고 헤맨 관광객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돌아다니는 데에는 크게 문제는 없었던 아부다비와 달리 시작부터 어렵다. 숙소는 어차피 잠깐 쉬다 나갈 곳이니 더 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숙소가 위치한 El Nozha 지역은 주요 관광지와는 멀지만, 그만큼 더 일상적인 이집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푼 뒤 첫 이집트의 대표 요리로 꼽히는 코샤리를 먹으러 길을 나섰다.
관광객이 없는 지역이라 그런지 영어 메뉴판이 없어서, 아랍어 메뉴판만 보고 시켜 보았다.(오히려 영어 메뉴판이 없는 곳일수록 더 제대로 된 로컬 식당이지 않을까 싶다) 코샤리는 마카로니 같은 파스타 면과 쌀, 콩, 튀긴 양파 등을 섞어 토마토 소스에 곁들여 먹는 요리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고 예상대로의 맛이 난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는데 바가지 없이 현지 가격으로 받아서 거의 인당 1000원(30~40파운드) 대에 먹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다만 먹다 보면 쉽게 질리고 꽤 기름지기도 해서 이날 이후로는 이집트에서 따로 코샤리를 사 먹지 않았다.
이집트 기독교 맛보기
아스완행 비행기는 밤 시간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남았다. 아부다비에서 시간을 많이 써서 이집트에서의 일정이 짧아졌기 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 한 개라도 더 보고자 일행 한 명과 함께 일단 시내로 향했다. 이집트의 관광지들은 4시~5시쯤 닫는 곳들이 많아서 아쉽게도 여러 곳 둘러볼 시간은 별로 없었고, '콥틱 카이로'라는 카이로 내 기독교 지구에서 교회(성당) 하나쯤 둘러볼 수 있었다. 한 그리스 정교회(알렉산드리아 그리스 정교회) 성당에 방문했는데, 초기 기독교 순교자인 성 게오르기우스를 위해 지어진 성당이었다. 원형의 성당 아래에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순교 과정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듯했다. 죄다 아랍어 또는 그리스어로 적혀 있어서 내용을 읽어내기는 힘들지만 십자가와 아랍어, 또 그리스어가 공존하는 모습만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더보기: 이집트의 종교사
오시리스, 호루스, 이시스 등 여러 신을 믿는 고대 이집트 신앙은 변화를 거치며 약 3천 년 동안 이어진다.(고대 이집트의 종교관에 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다뤄 보겠다) 그러다가 기원후 1세기부터 기독교가 유입되기 시작하고, 3세기에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고대 이집트 신앙은 탄압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몇 백 년 동안은 기독교(정교회) 영향권 아래에 있다가, 7세기경 아랍인들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부터는 이슬람화 된다. 현대 이집트인들의 대다수는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인들도 적지 않은 수(통계상 전체 인구의 약 10%)가 남아 있다.
이집트 기독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종파는 콥트 정교회(Coptic Orthodox)로,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분리되어 나온 비칼케돈파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부다. 콥트 정교회에서는 고대 이집트 교회의 전통을 많이 지켜오고 있으며 교회 언어로 '콥트어'라는, 고대 이집트어의 후계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도 이 콥트교 교회에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사전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보니 그리스 정교회 쪽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제대로 다시 방문해 보고 싶다.)
주변에는 기념품샵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이집트 첫날이기도 하고 해서 가격 조사 차원에서 몇 군데 둘러보았다. 이집트 신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상징인 앙크(아래 사진 좌측의 ☥모양)를 몇 개 샀는데, 가격 협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가게에서는 홍차를 대접해 주었는데, 주인장이 더운 날씨일수록 더 뜨거운 차를 마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기념품점에서 꽤 시간을 쓰다 보니 하나 더 구경하기엔 시간이 애매해져서 택시를 잡아 숙소로 복귀해 휴식을 취했다. 근처 상점에서 간단히 과자와 음료수 같은 것을 사 저녁을 때우고 밤에 다시 공항으로 이동해 아스완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조금 연착되어 거의 다음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이집트 남쪽의 도시 아스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다. 아스완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
더보기 : 고대 이집트 지리
나일 강은 남쪽 유역이 상류, 북쪽과 삼각주 지대가 하류이므로 고대 이집트에서 지역 구분을 할 때에는 남쪽을 상이집트, 북쪽을 하이집트라고 한다. 상하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경 나르메르에 의해 통일되며, 이 때문에 파라오의 왕관 프셴트(pschent)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관을 합친 이중관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상이집트의 남쪽으로는 누비아인들이 현재의 이집트 남부~수단 북부에 위치하여 이집트인들과 오랜 세월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집트의 중심지는 시대에 따라 옮겨갔는데,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주로 지금의 카이로 남쪽에 있던 멤피스(Memphis) 또는 지금의 룩소르에 위치했던 테베(Thebes)가 수도 기능을 많이 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침입 이후로는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가 크게 성장하여 중심지가 되었고, 이슬람 시대 이후에 카이로가 성장해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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