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에 관한 개인사
한때 국밥은 가성비 음식의 대명사로서 '국밥충' 밈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국밥 값이 10000원까지도 올라가는 요즘에는 '혜자' 음식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다만 이미 국밥 밈에 세뇌되어서인지 국밥 한 끼 먹으면 든든하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 출신인 필자는 '국밥' 하면 순대국밥이 먼저 떠오른다. 어렸을 때에는 순대국 특유의 향을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특히 부모님이 사 오시던 순댓국에는 순대는 없고 내장만 잔뜩 있어서 어린 필자에게 순대국밥은 상당히 괴상한 음식이었다. 따라서 어린 필자가 내장이 아니라 수육이 들어간다는 돼지국밥에 궁금증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2021년 1월 부산을 방문했을 때 제대로 된 돼지국밥을 처음 맛보았고, 그리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예상대로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미 내장이든 뭐든 잘 먹게 되어 버린 지금보다는, 더 어렸을 때 먹었다면 훨씬 좋아하지 않았을까.
부산으로
처음부터 국밥 먹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살다 보니 하루 정도 시간이 떠 버려서 머리를 비우고 아무데나 가보려고 했다. 친구에게 아무 도시 이름이나 대 보라고 했더니 부산이 나와서 별생각 없이 부산 가는 기차표를 잡았다. 부산 하면 돼지국밥이니까, 여행 컨셉은 대충 '돼지국밥 먹기'로 정했다.
부산역에는 23:30쯤 도착해서, 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6인실을 혼자 사용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역 주변을 약간 둘러보다가 서면으로 향했다.
아침 메뉴는 돼지국밥
서면에는 돼지국밥 점포가 여럿 모여 있는데, 이들 중 송정3대국밥 점포에 들어가 보았다. 나름 이름 날리는 국밥 맛집인 듯하다.
밥은 공기에 나오며 국에 숟가락이 꽂혀 쟁반째로 서빙된다. 아침이라 그랬는지 솔직히 기대했던 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맛없다는 건 아니고, 깔끔한 국물맛의 돼지국밥이었는데 그냥 첫 끼다 보니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 같기도 하다. 면을 가져다 말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고, 외국인 손님들이 자주 보였다.
식사 이후에는 서면에서 전포 쪽으로 걸어가며 거리 구경을 조금 했다. 전포에는 상당히 멋진 커피 기구 컬렉션을 보유한 부산커피박물관이 숨어 있다. 규모가 작고 찾아가기 쉽지 않은데, 임시 이전한 곳이라서 그런 듯하다. 짧은 구경을 마친 뒤 2호선을 타고 사상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는 돼지국밥
사상역에서 내려 서쪽으로 걸으면 괘법르네시떼역이 나온다. 괘법은 지명이고(괘법동), 르네시떼(Renecite)는 불어 어원의 쇼핑몰 이름이다. 사실 제대로 된 불어는 아니고 임의로 만들어낸 합성어라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괴랄한 역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직접 보니 재미있긴 하다.
혹시 새 구경이라도 조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 더 걸어 낙동강변에 갔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별 거 없었다. 바로 돌아와서 두 번째 국밥집에 도달했다.
평일 11시 반쯤의 조금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아서 2~3분 정도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특히 부산 현지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아침에 고기만 먹으니 약간 질려서 섞어국밥으로 주문했는데 밥은 토렴이고, 사진과 같이 맑은 국물에 양념과 다진 마늘이 올려져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마늘 때문인지 국물 맛이 상당히 좋다. 밥 대신 우동면이 들어가는 '돼지우동'이라는 메뉴가 있는데, 나중에 재방문해서 먹어 보고 싶다. 독자 여러분도 사상에 갈 일이 생긴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버스를 타고 구포역으로 향했다. 부산을 떠나는 무궁화호를 타고 필자는 돼지국밥의 고향, 밀양으로 출발한다.
밀양은 어디인가
경상남도 밀양시는 대구와 부산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로, 특이하게도 시내에 큰 하중도를 끼고 있다.
흔히 돼지국밥 하면 부산을 떠올리지만, 밀양에서 기원했다는 쪽이 정설인 것으로 보인다.
밀양은 필자도 첫 방문이라 시내를 조금 둘러보았다. 시내 지역에는 밀양향교나 밀양관아, 영남루 같은 건축물들이 가까이에 있고 전통시장과 항일운동 테마거리 등이 있어 볼거리가 꽤 있는 편이다. 산맥을 뒤로하고 밀양강을 낀 경치가 괜찮아서 영남루에는 한 번 가볼 만하다.
저녁 메뉴는 돼지국밥
원래는 좀 더 유명한 데로 가려고 했지만 일찍 문을 닫아서 다른 곳으로 갔다. 영남루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보아하니 줄도 서서 먹는 것 같은데, 방문 당시엔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평상에 앉아 먹을 수 있다.
사진처럼 둥근 쟁반에 나오고, 밥은 토렴식이다. 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가 있고 국물맛도 괜찮았다. 돼지국밥만 세 끼 먹었으니 질릴 만 한데 꽤 맛있게 먹은 것을 생각해 보면 나름 맛집이 아닐까.
식사를 마치고 강변의 카페에서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휘낭시에가 맛있었다. 밀양역에서 KTX를 타고 늦은 밤 서울역에 도착하며 짧은 여행은 막을 내린다.
왜 이 짓을 했는가
언젠가부터 줄곧 이런 미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구체적인 지역 선정 없이 그냥 한 번 멀리 가 보고 싶었고, 안 가 봤던 지역도 가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부산이라는 목적지를 받자마자 마침 연계되는 여행 컨셉이 생각나서 그대로 이행했을 뿐이다. 작년에 갔던 내일로 여행 같은 느낌도 조금 나고 좋았다. 기차값이 조금 아까웠던 것만 빼면 말이다.
어쩌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해서 자꾸 국내 어디든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 가는 돈을 생각해 보면 실속 있게 여행했다. 뭐든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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