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않고 또 온 서울內 해외여행이다. 사실 더 안 쓰려고 했는데, 이거 자료조사 하느라 쓴 돈이 아까워서 글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內 해외여행 시리즈는 저번 타코나 반미 에피소드처럼 음식 설명에 초점을 맞추어 개편해 보고자 한다.
아무튼 오늘의 주제는 러시아와 그 주위(舊소련) 권역의 음식들이다. 이쪽 지역의 음식들은 우리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으며, 접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당장 지나가는 사람 가져다가 러시아 음식 아는 거 있냐고 해도 모를 것 같다. 물론 러시아가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한국에서의 약간 비싼 가격을 감안하더라도) 한두 번 먹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DDP 옆 중앙아시아길
광희동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많은 러시아 관련 점포들이 몰려 있다. 이쪽의 음식점들은 전체적으로 러시아보다는 우즈베키스탄 느낌이 강하며 실제로 고객들도 그쪽 사람들이 많고, 중앙아시아 음식과 동유럽 음식을 같이 판매한다. 음식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죄다 사마르칸트라는 이름이 붙어있고(우즈벡 도시 이름이다) 거의 똑같은 메뉴를 판매하기 때문에 대충 아무 데나 방문해도 된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뭘 먹나요
평소에 이쪽 문화에 관심이 있지 않는 이상 메뉴판에 생전 처음 보는 메뉴만 많아서 당혹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간단히 동대문에서 먹기 좋은 중앙아시아 음식을 소개할 테니 이 글에서 조금 도움을 받아 보자. 이쪽 식당들은 러시아(동유럽) 쪽 음식들도 시킬 수 있지만 중앙아시아 요리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중앙아시아 음식들을 먼저 소개해 보겠다.
샤슬릭(шашлик)은 큼지막한 고기를 꼬치에 끼워 구워낸 요리다. 튀르크계 유목민족들의 음식인데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러시아에서도 꽤나 대중적인 요리가 되었다. 소고기나 양고기 등을 사용하며 주로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 무난하게 맛있고 우즈벡 식당에 왔다면 꼭 먹는 것이 좋으나 고기다 보니 약간 가격이 있는 편이다.
플롭(плов)은 밥에 고기와 야채, 향신료 등을 넣어 기름과 물에 익혀 먹는 우즈벡(및 중앙아시아 지역) 대표 요리다. '필라프'와 기원이 같으며 우즈벡에서는 오쉬라고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볶음밥과도 유사하나 조리 과정이나 맛에서 약간 차이가 있으며 먹어볼 만하다.
라그만(лагман)은 중앙아시아식 국수로, 중국의 라미엔(拉麵)을 위구르인들이 변형하여 퍼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의 위구르식 라그만은 물기가 적으나 우즈벡식은 국물이 많은 편이다. 국은 고기와 토마토, 양배추, 피망 등이 들어가며 살짝 매콤한 맛을 낸다. 칼국수와도 상당히 비슷하여 먹을 만하다.
만틔(манты)라는 만두 요리도 맛있다. 만두와 어원도 똑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국식 만두와는 맛이 꽤 다르다. 색다른 만두 요리를 먹어 보고 싶다면 만틔를 주문해 보거나 후술 할 러시아 요리인 펠메니를 먹어 보자.
삼사(самса)는 안에 고기가 들어 있는 페이스트리 빵이다.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으나 포장하여 집에서 데워 먹어도 맛있다.
현지인처럼 장보기
단순히 식사만으로 끝나는 게 아쉽다면 근처의 러시아 식료품점들을 방문해 보자. 구소련권 지역 사람들이 자주 찾는 식재료나 가공식품 등을 판매한다. 빵, 고기, 야채, 간식거리, 음료, 술 등을 찾을 수 있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품목이 많으니 직접 방문해 보자.
필자는 최근 방문한 가게에서 오른쪽 사진의 살로(сало)를 구입해 봤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역에서 먹는 염장된 돼지비계인데, 얇게 잘라 빵에 올리면 괜찮은 보드카 안주가 된다.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요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지역의 요리들은 상술한 중앙아시아 식당들에서도 접할 수 있으나 필자는 이태원에 위치한 트로이카라는 식당을 추천한다. 가게 인테리어부터 직원들 복장까지 러시아 컨셉으로 꾸며 놓은 곳인데 러시아 요리는 이쪽에서 먹는 편이 동대문에서보다 맛있다. 역시 동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지 않은 이상 주문이 어렵기 때문에 대표적인 요리 몇 개만 소개해 보겠다.
보르시(борщ)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의 국민 가정식으로 비트를 넣은 고깃국이다. 비트, 당근, 양배추, 토마토 등이 들어간 러시아식 소고기뭇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사워크림(스메타나)을 국에 풀어서 먹으면 되는데, 국에 크림을 넣는 것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풀어야 더욱 풍미가 살아난다. 빵(호밀빵!)이 있다면 국에 찍어서 먹자. 다른 국물 요리로는 우하, 솔랸카, 라솔니크 등이 있다.
펠메니(пельмени)는 작은 만두 요리이다. 필자가 먹어 본 곳들에서는 보통 국과 함께(만두국 형태로) 나왔다. 형태는 그냥 만두 같기도 하나 이국적이고 맛있다. 상술했던 러시아 식료품점 냉동코너에 가도 찾아볼 수 있다.
피로그(пирог)는 러시아식 파이 요리로 다양한 재료를 페이스트리 같은 빵 안에 넣어 구워낸다. 트로이카에서는 쿠르닉(닭고기)과 르브닉(생선) 피로그를 판매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쿠르닉이 상당히 맛있었다.
비프 스트로가노프(бефстроганов)는 소고기를 넣은 크림소스 요리로 보통 감자와 곁들여 먹는다. 세계적으로 꽤 대중화된 요리라서 굳이 러시아 식당이 아니더라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워크림에 거부감이 없다면 맛없을 이유가 없다.
+) '카르토쉬카' 또는 '카르토펠'이 들어가는 요리들은 죄다 감자가 들어간 요리라고 보면 된다. 이쪽 사람들이 감자를 많이 좋아해서 감자를 곁들이는 요리들이 많은데 맛은 그냥 당신이 상상하는 그 맛일 것이다.
+) 가격 때문에 그리 추천하지는 않지만 샐러드를 먹고 싶다면 올리비예(салат оливье)를 주문해 보자. 감자, 피클, 계란, 완두콩 등을 넣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음식이다. 고려인들이 만들어 구소련권 전역에 대중화된 마르코프차(морковча)라는 당근김치도 나쁘지 않다.
시베리아의 감성을 찾아서 : 부랴티야로
부랴티야는 바이칼 호 동쪽의 몽골 인접 지역이며, 이곳에는 러시아인들과 더불어 몽골계 민족인 부랴트인들이 거주한다. 동대문 중앙아시아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 카페 바이칼이라는 점포에서 이 부랴티야 공화국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다.
이곳저곳에 몽골/러시아/부랴트 관련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분위기도 좋고, 서비스도 잘 주신다.(무려 보드카 한 잔을 서비스로 주신다!) 요리가 생소하더라도 아마 친절하게 설명해 주실 것이다.
이 가게에서는 일반적인 러시아권 요리(보르시, 샤슬릭, 펠메니, 라그만 등)를 시킬 수도 있지만 부랴트 및 몽골 지역 음식도 도전해 보자. 위 사진의 만두는 부자(бууза)라고 하는데 샤오롱바오처럼 육수가 많은 몽골/부랴트식 만두다(몽골어로는 부즈 бууз라고 한다). 겨자소스를 곁들여 먹는 것이 특이한데, 나름 나쁘지 않다. 이외에도 부헬레르(бухэлеэр)라는 부랴트 전통 수프 요리, 부랴트/몽골식 튀김만두 호쇼르(хуушуур), 몽골식 볶음면 초이왕(цуйван)도 판매한다.
마무리하며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조금이라도 중앙아시아 및 동유럽, 시베리아 음식에 대한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들 요리들(특히 러시아 요리들)은 고급지고 거창하기보다는 정갈한 가정식 느낌이 강하다. 한국에서는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고 차는 곳도 한정되어 있어 자주 먹기는 어렵지만,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하다. 이번 겨울에는 따뜻한 러시아 요리에 보드카 한 잔으로 몸을 데워 보는 것은 어떨까? 술이 싫다면 홍차나 달달한 콤포트도 잘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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