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 연방의 수도이자 가장 큰 토후국이다.
7월 19일
Al Reem Island
간척지로 보이는 Al Reem 섬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아 두어 두바이에서 바로 이곳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Gate Tower라는 아주 높은 아파트 3동이 합쳐진 건물인데, 우리 숙소는 43층이었다. 시간이 꽤 늦어져서 저녁을 먹으러 길 건너의 작은 상가로 향했고, 조리된 음식을 몇 개 사서 숙소에 가져가 먹었다. 일행 둘은 챙겨온 한국 컵라면도 뜯어서 같이 먹었다. 사실 상가에 한식집도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한식이 먹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이날 마트에서 대추야자 초콜릿도 사서 먹었는데, 생각보다 대추야자 맛은 잘 나지 않고 초콜릿 맛이 강해서 대추야자가 무엇인지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밤에 내려다본 알 림 섬은 허허벌판에 고층건물이 군데군데 올라가 있는 상당히 특이한 곳이였다.
더보기 : 아랍 숫자 읽는 법
저번 두바이 포스팅에서도 보았을지 모르겠지만, 아랍권에서는 본인들만의 숫자 체계가 있다. 즉 우리가 흔히 쓰는 '아라비아 숫자'는 사실 아라비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순적이지만 원래 세상이 그렇다. 다행히도 외국인에게 친절한 아랍에미리트는 웬만하면 두 가지 숫자를 병기하기 때문에 알아보는 데에 크게 문제될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를 가게 되면(이집트라던가) 이 숫자들로 음식 가격이나 택시 번호를 유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외워 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7월 20일
아부다비 대추야자 시장(Abu Dhabi Dates Market)
대추야자 시장은 Al Reem 섬에서 그리 멀지 않은 Zayed Port 근처에 위치한 곳이다. 아마 이때쯤부터는 우버가 아니라 카림(Careem)이라는 중동권 택시 앱을 사용해 이동했던 것 같다. 카림 사용은 우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어렵지 않았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해서 이날 아침은 시장 옆의 Kuttyes라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사실 아침 먹을 식당은 특별히 정하고 들어갔던 것은 아닌데 들어가 보니 인도 음식(아마 남인도 케랄라 지역 쯤)을 메인으로 파는 곳이었다. 실제로도 인도계 근로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침부터 주문이 꽤 많아 바빠 보였다. 메뉴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기에 양파, 고수, 파프리카를 볶은 요리였고 거기에 난과 비슷한 파라타(Paratha)라는 빵과 묽은 커리 소스가 같이 나왔는데, 매콤하고 느끼하지도 않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가운데의 랩은 닭고기와 감자튀김 등을 파라타 빵에 말아낸 요리였는데 이건 그냥 먹을 만 했다. 다들 차를 마시길래 우리도 차를 시켜 보았는데, 오른쪽 사진의 밀크티인 카락 차이(Karak Chai)가 나왔다. 이 카락 차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인도/파키스탄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즐겨 마시는 듯했다. 많이 달지만 맛있다.
이곳 대추야자 시장은 바로 옆에 농산물 시장과 수산물 시장이 같이 있어서 일하는 사람이 꽤 있는 듯했다. 다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고객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농산물 시장은 그리 유심히 보지는 않았고, 대추야자 시장 쪽으로 넘어가 구경했는데 대추야자를 파는 가게들이 수십 개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도 다들 들어와서 구경해 보라고 호객을 해서 몇몇 가게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대추야자는 종류가 정말 많았는데 하나씩 맛보게 해 주었다. 대추야자는 대추의 향과 식감이 나면서도 대추보다 훨씬 단데, 서너 개 먹을 때쯤부터는 너무 달아서 더 맛보기가 힘들었다. 말린 것이 아닌 생대추야자도 파는데 엄청나게 단 즙이 나와서 더 먹기 쉽지 않았다. 대추야자를 맛보며 직원이 같이 마시라고 아랍 커피를 내려 주었는데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대추야자를 들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딱 아래 사진 같은 색의 커피였다.
이 커피가 너무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사우디산 커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보아하니 커피콩을 거의 볶지 않은 상태로 향신료(카다멈)와 함께 끓여내 저렇게 #9e9544쯤의 색이 나오는 듯하다. 모르고 먹으면 커피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특이한 맛이니, 중동에 왔다면 이런 아라빅 커피를 대추야자와 꼭 한 번 먹어 보자.
적당한 가격 협상을 통해 건대추야자와 대추야자 초콜릿(상당히 다양한 맛이 있는데 피스타치오 들어가면 웬만하면 맛있다)을 구매한 뒤 다음 장소로 향했다.
Qasr Al Watan
카스르 알 와탄(قصر الوطن, Qasr Al Watan)은 아부다비의 대통령궁/왕궁으로, 국빈 접대 등 외교 업무로 사용되는 궁전이나 민간 개방이 되어 관광이 가능하다. 미리 예약을 하고 들어갔는데, 복장 규정이 있어서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를 입을 수 없었으므로 제공되는 긴바지로 갈아입었다. Visitor Center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새하얀 신축 궁전이 나온다.
내부는 현대화된 이슬람 건축인데, 흰색과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자본의 힘을 보여 주는 듯하다. 화려한 내부 모습에 익숙해질 때쯤 건물을 돌아다니다 보면 회의실 몇 개와 함께 여러 전시실들이 보인다. 세계 각국과 외교를 하면서 얻은 선물들이 있는 방에는 우리나라에서 준 나전칠기를 비롯해 도자기, 검, 총, 갑옷, 카펫, 쿠란 등 수많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어떤 나라가 무엇을 주었는지 하나씩 보는 재미가 있다.
다른 쪽의 지식의 집(House of Knowledge) 전시실에는 아부다비 왕실의 고유 컬렉션으로 추정되는 고서적들이 있는데, 성서나 문학뿐만 아니라 과학(천문학)과 의학 쪽 고서적들도 많이 있다. 역덕이라면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으며 이슬람 황금기 시절의 아랍 지역 서적들과 함께 몇몇 흥미로운 유럽 쪽 서적들도 소장하고 있다.
더보기 : 이슬람 황금기
중세쯤(8~13세기 사이) 유럽이 전쟁과 종교 때문에 삽질을 하고 있을 때 이슬람권(아바스 왕조)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종교 정책과 선진적 교육 체계를 확립하여 세계 지식인이 모여드는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인도 등지의 학문이 이슬람 세계로 넘어와 수학과 과학, 예술 등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는데, 현재까지도 학문 이곳저곳에서 아랍어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대놓고 알-(Al은 아랍어권의 정관사로, 영어 the에 해당된다)이 붙은 Algebra나 Alcohol, Alkali, Algorithm뿐만 아니라 Chemistry나 Zero, Azimuth도 아랍어 어원이다.
이슬람 황금기는 십자군과 몽골의 침입으로 끝나지만, 이때 집대성된 지식은 르네상스 유럽으로 넘어가며 이어지게 된다.
이 전시실 옆에는 특이한 조형물(포토스팟)이 있는데, 선대 아부다비 왕이자 아랍에미리트 초대 대통령인 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자이드 빈 술탄 알나얀)의 다음과 같은 명언을 타원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الثروة ليست ثروة المال والنفط. فالثروة الحقيقية هي ثروة الرجال، ولا فائدة منها إن لم تسخّر لخدمة الشعب
부(富)는 돈이나 기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부는 국민(사람)에게 있으며, 국민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리더십에 관한 왕실의 철학을 그대로 나타낸 조형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외국인 입장에서는 기름과 돈이 있으니까 하는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지만,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이쪽 에미르들은 국민들과의 소통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두바이에서도 두바이 국왕이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나고 행사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듣는 사진이 많이 찍혀 있었고, 아부다비에서도 이렇게 사람을 강조하는 조형물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국민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받아들여지며 얼마나 소통이 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철학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듯하다.
Qasr Al Watan은 화려한 실내 장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아랍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의 국가 철학에 집중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시원하다 - 밖이 덥다는 걸 잠시 잊고 있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궁전에 대추야자 나무가 정말 많은데, 대추야자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망 같은 것으로 감싸 놓는 듯하다. 궁전을 나와 간단히 카페 같은 곳에서 점심을 때우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mirates Heritage Village
에미레이트 전통마을(Emirates Heritage Village)은 UAE 지역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민속촌 느낌의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아부다비의 전통 예술품들(금속, 가죽, 직물 공예)과 전통 가옥들, 그리고 낙타 등을 볼 수 있다. 두바이에서 갔던 박물관에서와 대략 비슷한 느낌인데 조금 더 전통 마을처럼 꾸며 놓은 대신 약간 낡은 느낌이 있다. 고양이가 많았고, 밖에 나와 있는 전통가옥들은 나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진 듯했으나 딱히 안쪽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아부다비에서 시간이 많다면 둘러볼 만한 곳이기는 하나, 위치도 애매하고 돌아다니기 꽤나 더워서 두바이 쪽 박물관을 가 봤다면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바다 색은 아름다웠으나 온도가 따뜻했다. 이렇게 고온의 바닷물은 처음 경험해 본 것 같다.
아랍에미리트의 배달문화
아랍에미리트 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배달 오토바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배달음식 관련 광고도 심심치 않게 많이 보인다. 이날 우리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배달앱 중 하나인 talabat을 설치하여 숙소로 음식을 배달시켜 보았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배달앱과 비슷하게 메뉴도 다양했고, 주문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날 우리는 Al Kebab Al Baladi Restaurant라는 음식점에서 Hashi라고 하는 어린 낙타의 고기로 만든 케밥과, 낙타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주문했다. 메르스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낙타고기는 특유의 냄새가 조금 있었으나, 밥과 함께 먹으면 꽤 맛있었다. 버거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였고, 무엇보다 따로 시켰던 중동식 요거트 음료(Laban with Mint)가 너무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 Laban with Mint만은 마실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폐기하였다.
이날쯤 일행 건강에 조금 문제가 생겨 원래 일정대로 다음날 카이로에 가기보다는 아부다비에서 머무르며 아부다비에 있는 한인 병원 진료가 잡힐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집트가 정말 가고 싶었기에 비행기와 숙소 등을 날리고 아부다비에 계속 체류하는 것이 싫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 같다. 기대가 컸어서 마음을 다잡기 꽤나 힘들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일단 숙박을 하루 연장하여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7월 21일
Reem Mall
이날 오전에는 Reem Mall이라는, Al Reem 섬 안에 있는 쇼핑몰에 가서 휴식하였다. 샌드위치 같은 것들로 아침을 때우고, 아랍에미리트에 꽤 흔하게 있는 Carrefour(까르푸)라는 슈퍼마켓에 가서 평범한 아부다비 마트에는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인도네시아산 컵라면(Indomie 브랜드)을 몇 개 사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아무래도 인도네시아 쪽이 무슬림이 많다 보니 아랍권에서도 잘 팔리는 것 같다. 맛은 그냥 그랬다 -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 라면이 낫다.
사진을 못 찍었지만 한국에선 볼 수 없던 PRIME이란 음료수도 살 수 있었고, 물과 음료수도 조금 샀다. 두 가지 종류의 코코넛 주스를 사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봤더니 세 명 모두 싼 가격의 주스가 훨씬 맛있다고 하는 결과가 나와 버렸다.
해외여행 중 마트를 둘러보면 한국산 제품들, 또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제품들을 모두 볼 수 있어서 꽤나 재밌다. 아랍에미리트의 마트 품목은 중동/인도 음식이 조금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미국(서양권) 마트와 거의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생소한 품목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고, 미국에서 보았거나 미국 매체를 통해 접해 본 품목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근처 다른 마트에서 유튜버 미스터비스트의 초코바인 Feastable도 발견했었는데 너무 비싸서 구입하지는 않았다.
The National Aquarium Abu Dhabi
오후에는 아부다비 국립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어종들이 꽤 있었고, 물고기 외에도 새나 파충류, 포유류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어서 좋았다. 같은 시간대에 어린이들이 단체로 구경을 와서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고, 또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이주해 왔다는 매너티가 있다는 점도 신기했다.
중간에 새들이 있는 구역은 그냥 뚫려 있어서 새가 머리 위로 날아다닌다. 머리 위를 쳐다보니 투칸이 있어 깜짝 놀랐다;;
Umm Al Emarat Park
시간이 조금 남아 공원에 들렀다. 아부다비 도심에 위치한 Umm Al Emarat 공원은 분수와 작은 동물원(낙타, 염소, 에뮤 등)이 있는 곳으로, 볼 게 많지는 않지만 휴식하기에 괜찮은 곳이다. 물론 날씨가 시원할 때의 이야기다. 이곳 공원에도 선대 국왕의 어록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는데, 전날 카스르 알 와탄에서 본 리더십에 관한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날 저녁은 Seafood Express라는 곳에서 해산물(새우, 홍합, 오징어 등)을 향신료와 함께 끓여낸 Seafood Boil을 먹었다. 미국 케이준 스타일의 요리인데 한 번쯤 먹어 보고 싶었던 음식이었다. 양동이에 담겨 있는 해산물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 놓고 손으로 집어 먹었고, 양념이 잘 되어 있어 기대했던 만큼 정말 맛있었다.
이날을 끝으로 더 이상 Al Reem island에서의 숙소를 연장할 수 없게 되어 시내 쪽의 다른 호텔로 숙소를 옮겨 잡았다. 아부다비에서의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더보기 : 토막 아랍어
아랍어로 인사를 해 보자.
السلام عليكم (As-salamu ʿalaykum, 앗살람 알라이쿰)
직역하면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정도의 뜻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이 한다.
وعليكم السلام (Wa ʿalaykumu s-salam, 와알라이쿠뭇 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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